[리뷰] 언어의 뇌과학



현대지성 출판사의 "언어의 뇌과학(알베르트 코스타 저/김유경 역)"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표지


아기는 어떻게 언어를 습득할까? 이중 언어 구사자들은 주의력이 더 좋을까? 혹은 머리가 더 좋거나 치매에 걸릴 확률이 줄어들까? 그리고 이런 것들은 어떻게 측정할까?

본 도서는 위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다. 저자는 평생에 걸쳐 연구한 이중 언어 사용과 뇌라는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저술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지만 궁금했던 주제에 의문을 던지는 것으로 출발하여 특정 가설이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 있어 기발하고 흥미로운 실험법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답을 들려주는 구성이 일품이다.

책은 크게 5가지 주제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아기의 탄생에서 출발하여 한 사람이 언어를 습득해나가는 매커니즘, 이중 언어자와 단일 언어자의 차이, 이중 언어가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 이중 언어를 익히기 위한 조언,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실험법과 과학적 측정 방법이 소개된다.

영어와 같은 외국어를 빨리 익히는 방법을 다루는 책은 아니다. 이미 그런 책들은 시중에 널리고 널렸기에 큰 의미가 없을 듯 하고, 본 도서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부분은 이중 언어자와 단일 언어자의 비교가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과학적 실험법과 측정법을 소개한 파트도 마음에 들었다. AI에 관심이 많은 나로써는 AI 모델에 한 부분으로 활용된 행동 경제학 모델이 포함된 것이나, RNN등의 모델에 활용되는 전이 학습의 개념 등 AI에 영향을 준 기술들의 실체를 확인하며 앎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전이 학습

위에서 개인적으로 정리한 이 책의 5가지 굵직한 주제를 중심으로 인상깊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아래와 같이 요약해 본다.


  • 일반적인 언어 습득의 매커니즘
    • 아기들은 구두언어로 처음 단어를 구분한다. 문자 언어와는 달리 구두 언어에는 공백이 없기 때문에 소리 사슬에 빈칸이 있음을 추측하여 단어를 구분하지 않는다.

    대신 소리 사슬을 잘 나누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데 예를 들면 스페인어에서는 str로 시작하거나 끝나는 단어가 없음을 예로 들 수 있다.

    더불어 전이 효과를 들 수 있다. tupiro라는 단어로 예를 들면 tu 다음에는 pi가 따라오고 그 뒤에는 ro 음절이 따라오는 경우의 수가 많다. 서로 다른 단어들 사이의 전이 확률을 파악하는 머리속에 무척 강력한 통계 컴퓨터가 있는 셈이다.

    한편 특정 언어에만 존재하는 음운적 속성도 있다. 중국어의 성조가 그 예이다. 이런 소리에서 구별할 수 있는 온갖 특징을 활용하여 아이는 소리 사슬을 구분하며 생후 1년 이내 이 구별 능력이 최고조에 달한다.

    • 이후 시각이 발달하면 조음 운동을 유심히 본다. 성인도 주위 소음이 심하거나 잘 모르는 말이 나올때는 상대방의 입술을 보는데 이중 언어자 아기들은 조음 운동이 더욱 발달한다. 생후 1년 6개월쯤 되었을 때는 어휘를 폭발적으로 습득한다.

    •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거나 믿고 있던 신념과 상충되는 정보를 입력받는 경우 모호함을 제거하고자 노력한다. 이를 상호 배타성 원리라 하는데 이 때문에 편향이 발생한다. 이중 언어자들은 하나의 개념이 두 단어와 연결되어 있기에 편향이 덜하다.

    • 특정 상황에서 습득 연령이 습득 능력보다 중요하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 고등 교육을 받는 사람은 대개 3.5만개의 단어를 알고 있다. 하지만 하루에 겨우 천개 정도의 단어만 사용하며, 세르반테스도 그의 전 작품에서 8천개의 단어만 사용했다.


  • 이중언어자와 단일언어자의 차이
    • 관여하는 뇌의 영역은 동일하나 피질 표상에 차이가 있다. 이중 언어자의 경우 2가지 언어가 모두 활성화 되고, 단일 언어자의 경우 2가지 언어가 겹치는 부분이 적다.

    • 언어 통제 능력이 뛰어나다. 마치 저글링으로 두 개 이상의 공을 처리하듯이 언어 간 상호간섭이 일어나지 않는다. 즉, 무슨 언어를 사용하든 두 개의 언어가 동시에 활성화된다. 도중 하나의 언어를 끄는 것이 불가능하다. 언어통제능력

    • 의식적으로는 이미 모국어를 모두 잊어버린 입양자들 조차도 유아기에 형성되는 소리를 구별하는 능력은 남아있었다.

    • 이중 언어 사용이 인지능력을 저하시킨다거나 정신 분열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가설은 미신에 가깝다.

    • 어휘량은 이중언어자들이 다소 적다. 이는 새 단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얼마나 자주 노출되어 있는가와 관련이 있다. 이중 언어자가 단일 언어자보다 각 언어에 덜 노출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어휘량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감소폭은 매우 작다.

    • 언어들 사이의 유사성이라는 관계를 이미 이해하고 있기에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데 유리하다.

    • 자기 중심적 편향이 적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이 더욱 빨리 발달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시몬효과(자극이 생각과 상이할 때 응답 시간에 차이가 나는 현상)를 더 적게 경험하여 주의력이 높고, 인지 유연성을 더 확보하고 있다.

    • 뇌의 노화와 관련하여 인지 예비용량이 더 크기 때문에 치매 등의 증상으로 신경과를 방문하는 일이 단일 언어자에 비해 3년 정도 늦다.


  • 의사결정에서의 이중 언어 활용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면 상대방의 머리로 가고, 상대방의 언어로 말한다면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 넬슨 만델라

    • 사고 편향
      의사 결정 시 사람들은 무엇을 선택할지 실제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세부 사항을 단순화하고 경험적으로 알게 된 지름길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최적 선택이 아닌 결정을 할 수 있는데 이런 왜곡을 사고편향이라고 부른다.

      다음 문제를 풀어보자.

      린다는 31세 여성으로 미혼이고 지적이며 똑똑하다. 철학을 전공 후 사회 차별 정의 문제에 관심이 많아 반핵 시위에도 참여했다. 다음 중 누가 린다인가?

      a) 은행 창구 직원

      b) 은행 창구 직원이고 여성주의 운동가

      대부분 결합 오류에 빠져 b)를 답으로 고른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a)일 가능성이 높다.

    • 프레이밍 효과
      의사 결정은 프레임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다음 문제를 풀어보자.

      최근에 위험한 질병이 퍼지고 있다. 약이 없으면 60만명이 죽을 것이다. 약 A와 B가 있다.

      A는 20만명을 구할 수 있다.

      B는 1/3을 구할 수 있고, 아무도 구하지 못할 확률이 2/3이다.

      당신은 어떤 약을 선택할 것인가?

      약 75%의 사람은 A를 선택한다. 일명 위험 회피의 선택을 따르는데 B를 선택하면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일한 상황에서 두 번째 문제를 풀어보자.

      A는 40만명이 죽을 것이다.

      B는 1/3이 아무도 죽지않고, 다 죽을 확률이 2/3이다.

      당신은 어떤 약을 선택할 것인가?

      대부분 B를 선택한다. 생명이나 돈을 잃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인데 이를 손실 회피 현상이라고 한다.

      이처럼 같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프레임의 제약을 받는다. 놀라운 것은 제2 언어로 말할 때는 프레이밍 효과에 걸려들지 않는다. 외국어와 관련된 감정성 감소 때문이다.

    • 인지 반응 검사

      또 문제를 풀어보자.

      1.야구 방망이와 야구공은 총 1.10유로이다. 방망이는 공보다 1유로가 더 비싸다. 공은 얼마인가? ( )센트

      2.만일 5개의 기계가 5개의 키보드를 만드는 데 5분이 걸린다면, 100개의 기계가 100개의 키보드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릴까? ( )분

      3.호수에 꽃이 피는 지역이 있다. 매일 꽃이 피는 지역은 두 배의 면적으로 커진다. 꽃이 호수를 덮는 데 48일이 걸린다면, 호수의 절반을 덮는 데 며칠이 걸릴까? ( )일

      답은 10, 100, 24이다. 너무 쉬운가? 그렇게 선택했다면 오답이다. 답은 5, 5, 47이다.

      이 문제는 이중 언어자와 무관하게 오답율이 높다. 즉, 감정 체계를 수반하지 않는 논리 문제에서는 외국어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이다. 상대방의 가슴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모국어를, 상대의 머리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 이중언어를 익히기 위한 방법
    • 꾸준한 연습이 최고의 방법이다.
    •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상호작용 없이 동영상이나 음성에 자주 노출된다고 해서 외국어를 빠르게 익히진 못한다.
    • 자녀를 더 도전적이고 풍부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언어 환경에 노출시키는 것이 좋다.

  • 과학자들의 실험과 측정 방법
    • 공갈 젖꼭지 빨기 방법 아이들의 빨기 반사를 통해 집중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새로운 단어를 들을 때 흡입률과 흡입폭이 줄어든다. 이 실험을 통해 언어를 구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신경 촬영법 : 특정 영역의 산소 소비량 측정, 뉴런 그룹이 만든 전기적 활성 기록 추적 등
    • 경두개 자기자극술 : 두개골에 자기장을 생성하여 뉴런의 전기 기능과 일시적으로 상호 작용한다. 뇌 영역의 간섭이 가능하며 피질 구조를 바꿀 수 있다.
    • 피질 전기 자극술 : 호문클루스 지도를 발생시킨 기술. 덕분에 뇌종양 제거 시 환자에게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지 예측이 가능해졌다.
    • 생리학적 반응 연구 : 피부의 전기 전도도, 심박수, 동공 확장 등

이렇듯 본 도서에는 언어를 익히는 원리부터 이중 언어자들이 가지는 흥미로운 특성들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미 나를 포함하여 본 리뷰를 읽고 계신 독자분들은 이중 언어의 습득이 너무 늦어버린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의 자녀 그리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중 언어가 가지는 장점과 불확실하게 퍼진 미신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 뇌를 연구하는 과학 매커니즘으로 여행을 떠나고 연구 방법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모든 학문은 이렇고 저런 그물로 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철학이나 아이디어 발상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리의 뇌와 언어에 대한 훌륭한 교양을 담고 있는 책인만큼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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