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 아직 안 죽었다



한빛비즈 출판사의 "나 아직 안 죽었다(김재완 저)"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표지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깍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혹시 이 노래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저자는 74년생, 한국나이로 올해 48세이니 40세 ~ 50세 연령의 독자라면 아마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노래일 것이다. 73p에 수록된 신해철의 민물 장어의 꿈이라는 이 노래는 당시 유명하고 인기 많았던 노래다.

이 책은 옛 추억부터 인생의 다사다난한 이야기까지 삶을 안주거리 삼아 저자와 비슷한 나이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하는 책이다. 읽다보면 왠지모를 푸근함이 느껴진다. 저자는 내게 형님뻘 정도 되는 나이인데 삶을 먼저 살아온 선배로써 인생의 기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지혜 혹은 지금은 모르지만 나이 먹어가며 알게 될 소중한 무언가 등을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보다 얻을 수 있는 소중함은 마음의 풍만함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인생에서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을 것이다. 책에서 표현했듯 인생의 대부분은 아픔이고 기쁨은 순간이다. 그렇게 내 마음은 상처받고 있지만 부족한 나를 자책하느라 아파할 겨를도 없이 달려간다. 그리고 문득 돌이켜 보면 어느새 인생 절반이 사라져있다.

정신없이 달려온 나는 누가 위로해주나? 대부분의 남자들이라면 술자리와 친구가 빈자리를 채워줬을 것이다. 그런데 왠걸? 30대에 만났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가족과 와이프의 눈치를 봐야 한단다. 나도 마찬가지니 할 말은 없다. 소수 정예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모임은 코로나19로 박살이 났다. 아마 나만의 아픔은 아닐 것이다.

정신없이 바쁘고 살아온 나에게 이 책은 쉴 틈을 주었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추억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해준다. 저자의 경험을 읽으며 잊혀졌던 과거가 하나둘씩 떠오른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쇼파위에서 미친놈처럼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맞아. 내가 그랬었지. 그 때 너무 행복했는데 왜 까맣게 잊고 살았을까?”

그렇게 잊혀진 내 삶에 새싹이 돋아난다.

민물 장어의 꿈을 인용한 이유는 이런 맥락에서다. 이 노래는 내가 Live로 들었던 노래는 아니다. 나보다는 나이 많은 선배들이 즐겨듣던 노래인데 대학 동아리 방에 고학번 선배들이 주구장창 틀어놓았기에 처음엔 반 강제로 들었다. “신해철의 노래에 담긴 철학을 니들이 아냐?” 등등 당시 별 시시콜콜한 아재들의 얘기를 술자리에서 반 강제로 들었던 때문인지 어느덧 노래에 중독된 나를 발견했었다.

MP3 포맷이 대한민국에 처음 등장했을 무렵 난 자취방에서 이 노래를 원 없이 들었다. 노래속의 민물 장어는 나다. 이 거센 물살을 거슬러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도 해보고 지금 생각하면 풋내기이지만 당시에는 성인이 되어 나름 심각했던 인생의 장애물들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해본다. 웅장한 멜로디는 이상하게 나를 달래는 힘이 되어준다.

저자와 내게는 민물 장어의 꿈이겠지만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먼 미래에 BTS의 노래를 들으며 이런 감흥을 느낄지 모르겠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일지, 더클래식의 노래일지, HOT의 노래일지, 박효신의 노래일지, 아이유의 노래일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누구나 이런 곡 하나쯤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한 마디로 정의하기 너무 어려웠는데 비유하자면 그런 느낌이다. 사람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는 현실의 나를 위로해주는 것 혹은 그 안에 숨은 창의성에 교감하는 것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노래를 듣던 과거의 나를 생생하게 살아나게 해준다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노래다.

이심전심일까? 저자와 통한 것인지 편집자와 통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목차는 여느 책 처럼 1장, 2장, .. 혹은 챕터1, 챕터2, .. 이런식으로 흔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대신 가족 Track, 추억 Track, 직업 Track, 현생 Track 이렇게 4개의 Track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음악처럼 말이다. 트랙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각 트랙들은 거의 타임라인 순으로 이어져 있다. 추억에 잠겨있다 현실로 돌아오는 액자식 구성이 섞여 있어 완전한 타임라인은 아니지만 난 가급적 책을 순서대로 읽을 것을 권장하고 싶다.

가족, 추억 트랙을 읽다보면 잊혀었던 과거의 내가 선명해진다.

“그 때 그런 꿈을 갖고 살았었지. 당시 내 가치관은 이랬었지. 맞아, 어린 나이에 돈만이 벌어서 어머니께 뼈에 좋은 오스칼 약을 사다 드린다고 했었지! 근데 지금 그 정도의 돈은 있는데 왜 아직 못 사다 드렸지?” 등등 별의 별 내 모습이 시시콜콜 다 떠오른다.

그렇게 또 하나의 내가 탄생한다. 아니, 정확히는 잊혀졌던 과거의 내가 내 옆에 서 있게 되는 느낌. 그리고 그때의 삶과 덧칠해진 지금의 나 둘이 책을 함께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렇게 둘이 함께 업, 현생 트랙을 읽으면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와.. 이거 완전 잘못살고 있었네.. 아니 이런.. 쓰레기가 다 있네.. 인생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달리고 있으면 잘 살고 있는거라고 착각하고 살았어.. 그러니 할만큼 다 했는데 이 모양이 되었다고 주위와 인생을 원망하지..”

지금의 내 모습을 내가 보는 것이 아닌 제 3자가 봐주고 얘기해주는 기분이랄까? 지금 내 모습이 또렷하게 보인다.

지식을 쌓는 목적으로 주로 책을 읽어온 나에게 이런 책은 좀 특별했다. 그래서 리뷰를 쓰기 너무 어려웠다. 주로 어떤 지식을 담고 있다고 요약하며 작성해 왔던 리뷰 스타일에서 요약할 것은 없는데 내용은 충만하니 이걸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머리 보다는 가슴으로 읽는 책인지라 책의 내용보다는 느낌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잊혀졌던 소중한 기억, 기억의 틈에 숨은 소소한 행복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어떻게 살아가라고 현명하고 단호하게 꾸짖는 소년시절의 나를 발견하고 싶다면 이 책과 함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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