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가사키의 종



페이퍼로드 출판사의 "나가사키의 종(나가이 다카시 저/박정임 역)"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표지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팻맨”이 투하되었다. 이 책은 원폭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나가사키 의과대학 교수의 생생한 기록이자 참상을 겪으며 평화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는 회고록이다. 나가사키성당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버전의 자아와 충돌했다.

일제의 식민지였던 대한민국의 후손으로써 죄지은 일본의 처참한 댓가는 인과응보라는 생각, 같은 인간으로써 원폭이라는 끔찍한 참상 속에 느끼는 괴로움과 동정심, 가톨릭 신자로써 한 차원 넘은 평화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존경심까지..

나는 내 속에서 참 많은 나 자신과 중요한 가치에 무엇인지에 대해 꽤 긴 시간 토론했다.

자신이 흘린 피로 흰 천에 일장기를 그리는 저자의 모습, 그리고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 발표에 분개하는 저자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반면 전쟁을 좋아했던 일본의 업보가 일본 국민에게 화를 불렀다고 반성하는 모습에 인간미를 느끼기도 했으며, 마지막 장에 나가사키 성당의 수천명 신도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이 땅이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는 초월적인 판단에 왠지 모를 숭고함을 느끼기도 했다.

책은 가치는 크게 두가지로 논할 수 있다. 하나는 의과대학 교수로써 원폭 피해를 있는 그대로 최대한 소상하게 남긴 진리탐구 기록물로써의 가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쟁의 허무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숭고하게 전달하는 철학적 가치로 요약할 수 있겠다.

책의 전반부는 원자폭탄 투하로 어떤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는지 매우 소상하게 담고 있다. 전반부가 차지하는 페이지의 양이 상당한데 거의 100 페이지에 육박한 내용들이 고작 하루만에 벌어진 사실이라는 것이 놀랍다. 그만큼 당시 폭탄이 떨어진 참상을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책은 굴뚝에 민가의 연기가 올라오던 1945년 8월 9일의 평화롭던 나가사키의 아침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다음 원자폭탄 투하의 파괴력이 무엇이었는지 콘크리트 건물안에 본인이 눈으로 보았던, 피부로 느꼈던 장면이 생생히 묘사된다.

본인의 경험 외에도 풀을 깍다 풍압에 튕겨나간 농부, 구덩이를 파다 구덩이를 경계선으로 생사가 오고갔던 동료 교수의 이야기, 자전거를 타고 귀환하던 한 시민의 이야기 등은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을 재구성한 것이리라.

그 와중에서도 의과대학 교수로써 원폭으로 희생된 부상자들을 최대한 살려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같은 사람으로써 너무도 존경스럽다.

특히 자신의 귀에 있는 동맥이 끈어졌음에도 동맥이 얇아 3시간은 버틸 수 있다는 판단으로 피가 새는 와중에도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이를 돌보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생존자들을 부상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활동에서 생과사의 갈림길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타인을 위하는 이타적인 모습들이 아름답다.

나가사키종

원자 물리학을 전공한 동료교수조차 방금 떨어진 폭탄이 원자폭탄인지 정확히 인지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정도로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도 특징이다.

원자폭탄이 투하되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6장에 담긴 저자의 언급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원자의 분열과 동시에 만물유전의 동력이 해방되며 단숨에 만물을 압살한다. 공기중에 방출된 거대한 힘이 공기 분자를 사방으로 밀어내며 거대한 풍압이 사방으로 진행된다. 내부에는 진공 상태가 발생하며 풍압에 뒤이어 거대한 음압이 따라온다. 사물을 빨아들이는 힘 때문에 하늘 높이 소용돌이 치며 올라간다.

원자가 분열될 때 방출되는 미립자는 중성자, 양성자, 알파 입자, 음전자, 새로운 원자, 원래의 원자이다. 이 중 중성자가 가장 강력한데 전기장과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않고 그대로 직장하여 물체를 통과한다. 초속 3만 킬로미터이다.

새로운 원자는 공중에 부유하며 낙진이 된다. 오랫동안 잔류 방사능의 원천이 된다. 미립자를 중심으로 수증기가 응결되며 버섯 구름현상이나 굵고 검은 빗방울도 만들어 낸다.

거대한 열에너지는 모든 것을 태우며 특히 검은색 물체는 더 심하게 타버린다. 이노우에의 눈동자에서 검은자위만 구멍이 뚫렸던 이유가 그것이다.

감마선은 신체를 관통하고 적외선은 노출 부위에 화상을 입힌다.

당시 끔찍했던 참상에 대한 인용을 줄였음에도 위 글만으로도 원폭의 참상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나리라 생각한다.

후반부의 저자는 겨우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생활을 이어가며 원폭 투하 지역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지역 거주민들에게 어떠한 증상들이 나타나는지 기록을 남긴다. 그 와중에도 진리탐구에 열중하며 행복을 느끼기도 하는 저자의 모습에 행복이라는 것이 결코 먼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행복의 진의를 다시금 느끼기도 했다.

11장 움막에 찾아온 손님편에서 몇년 간 원폭 피해를 지켜본 저자의 가치관과 인생에 대한 담담한 수긍이 잘 드러난다.

“우라카미(나가사키 원폭 투하 지역)가 선택되어 제단에 바쳐졌음에 감사드립니다. 이 고귀한 희생으로 세계에 평화가 다시 찾아오고 일본에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었음에 감사드립니다. 바라옵건데 죽은 이들의 영혼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평안히 쉬게 하소서. 아멘.”

마지막 두 아이에게 남기는 유언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이다. 그 중 세상 어느 사람도 잊지 말고 놓치지 말아야 할 글귀를 인용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쟁의 참혹한 상흔을 바라보며 외칠거야. “전쟁은 이제 지긋지긋해.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 하지만 몇 년만 지나면 어느새 참혹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다시 전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싹트게 된단다. 인간은 이다지도 어리석은 존재란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현장에서 저자의 부인은 돌아가셨다. 아이 둘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저자의 마지막 글에 먹먹한 여운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책에 부인을 잃었던 아픔과 자식을 남겨둔 사적인 비통함 조차 남기지 않았다. 오직 객관적인 눈으로 참상과 원폭 피해의 변화를 기록하며 평화라는 초월적인 깨달만 담담하게 전하는 저자는 보통 사람들이 따라가기 힘든 숭고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가이다카시

저자는 서문에 이 책은 의학 논문, 과학적 기록, 문학적 르포 그 어느것도 아닌 가치없는 인간적인 수기라고 스스로의 글을 겸손히 폄하했다.

하지만 독자인 나는 다르다. 이 책은 교과서보다 중요한 책이며 성인이 되어 누구도 빠짐없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몇 안되는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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