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페이퍼로드 출판사의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줄리아 보이드 저/이종인 역)"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표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듯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독일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은 책으로,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고 배울 수 있는 메타 인지를 자극하는 명작이다.

우리는 과거에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음에도 정작 역사라는 단어에는 인색한 것 같다.

철학에 가까운 개념으로 받아들이거나 일상에서 하등 쓸모없는 뻔한 지식 조금 후하게 쳐주더라도 알고 있어봤자 그저 교양있는 사람 정도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는데 있어 대부분의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려나는 그저 그런 것이 대중들이 흔하게 인식하는 역사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역사적 위인들의 자서전에서 삶의 인사이트를 얻고자 하는 것은 물론 비슷한 상황에 처한 유튜버의 영상을 즐긴다. 부를 증식하고자 주식시장에서 과거의 패턴을 분석하기도 하고 집값을 예측하고자 거시 경제 전망을 훑어보며 그 과정에서 세계 대공황 당시 미국의 금리 혹은 부양 정책을 분석한다.

최근 헝다주식이 제2의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유사한 것이 아닌지 10여년 전의 금융위기를 파헤치며 심지어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한다는 AI로 대표되는 데이터 분석 세계에서는 과거의 패턴을 분석하고자 애를 쓴다.

단지 역사와 과거라는 두글자의 차이일진데 우리가 바라보는 인식의 각도는 왜이리도 벌어진걸까?

이 책은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자세, 방법, 관점에 경종을 울린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세대는 단절되었다. 인류 정보의 전달은 문자의 발명이래 책이라는 수단으로 명맥을 이어왔으나 수명의 한계라는 섭리 속에 누수되는 정보는 상당하다.

책에 등장하는 1919년에서 1944년에 이르는 독일을 여행하고 방문했던 이들의 시선이 오늘날 우리의 시선과 얼마나 다른지가 그 방증이라 하겠다.

먼저 우리의 시선은 간단하다. 그 시절을 살았던 이들 중 아직까지 산 증인으로 역사속에 남아있는 이는 매우 드물다. 세대는 이미 단절되었고 오직 남은 기록과 누군가의 평론에 기댈수 밖에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히틀러와 나치는 악마 그 자체이다. 인종 차별과 학살,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죽음, 선전을 통한 사상의 지배, 정치가 종교에 도달하는 광기는 물론이거니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하나의 프레임이 더 씌워져 있다.

Axis powers의 주축에 일본이 포함되어있으니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당시 나치는 일본놈들과 비슷한 놈들 일것이라는 추측히 한꺼풀 더 덮여있다. 그야말로 악 그 자체이며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우리 뇌는 의식적으로 당시 나치를 선명하게 들여다보길 주저한다.

그렇다면 대체 그 당시의 사람들의 눈에 독일은 어떻게 비춰졌길래 오늘날 세계인 대다수가 인지하는 시선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일까? 몇가지 시선을 요목조목 따져보면 이러하다.

라인강과 포도원, 고산 지대에 위치한 웅장한 고(高)성 등의 아름다룬 자연환경은 당시 많은 영국인과 미국인들을 독일의 관광객으로 끌여들일만한 매력적인 요건이었다. 고성

당시 독일 국민성도 한 몫했다.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색함이 덜했고 근면 성실한 모습이 자본주의 확산기에 갖춰야할 덕목으로 적격이었다. 이것이 의도한 것인지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책에 등장하는 사료로는 양쪽 모두 존재한 것처럼 비춰진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경제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사실이다. 100만 마르크에 빵을 사고 아침에 일어나면 10억 마르크에 되팔 수 있었다는 풍문은 당시 시대상을 대변한다.

인성도 괜찮고 열심히 살며 하이퍼 인플레이션 상황속에도 굴하지 않고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더욱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당시 패전국을 향한 막대한 부채를 요구했던 베르샤유 조약이 근본 원인이었으니 동정심 또한 상당했으리라.

민주주의는 아직도 성숙 단계이지만 그 때는 지금보다도 덜 성숙한 시기였는데 이런 상황역시 독일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에서 출발하여 니체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구 사회에 사람들에게 초인 정치에 대한 동경과 환상은 여전했다.

어쩌면 다소 통제가 심할지는 몰라도 국가를 효율적으로 살려내는 듯 보이는 히틀러의 독재에 이러한 동경이 오버랩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유대인에 대한 학살과 인종 차별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요소인가라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당시 미국 또한 흑인에 대한 차별과 노예제도가 극심하던 시절에 신흥 강국 미국이 유대인 문제를 지적하긴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구 사회 대부분의 국가에서 식민지배가 만연했던 시기였기에 식민지국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드는 일 또한 흔했으니 어쩌면 당시 시대를 살아가는 눈에는 민족주의적 차별 정도는 상식 수준의 일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세계대전 2차례 사이의 샌드위치 시기였던만큼 공산주의를 필두로 한 소련의 전진이 유대인보다 중요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 소련의 거침없는 도발을 서구사회 최전선에서 지켜내는 수호자이자 방파제인 독일에 얼마나 가혹한 시선을 보낼 수 있을까?

파시스트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당시 독일 국민을 우매하다 평할 수 있을까? 독일의 부흥과 재건을 위해 똘똘뭉쳐 근면성실하게 일한 이들을 비난할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의 역사에도 민중들은 위기 때마다 똘똘 뭉쳤다. 일제 강점기의 국채보상운동, IMF 시절의 금모으기 운동은 독일 국민의 노력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자. 다시 오늘날의 우리로 돌아와보자. 객관적인 눈으로 당시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교과서에 확정되어 있는 프레임 몇줄을 읽은 것으로 나치에 대한 거부감을 확신할 수 있겠는가?

한 단계 양보하여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 여행자로 돌아간다면 다른 시선으로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받아들였다. 이미 지나가버린 나치에 대한 선, 악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시절 당시 여행객으로 돌아간다면 당시의 나치에 대해 과연 오늘날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프레임으로 진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그럴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안목을 키워 현실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을까? 또 이를 통해 과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위에 열거한 질문과 답 사이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오늘날로 돌어와 현실을 돌아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포퓰리즘, 태극기부대, 중국과 일본과 미국, 일상의 사소한 갈등에 이르기까지.. 정답을 얻기까지 계속 노력해야겠지만 적어도 우물안 개구리의 프레임을 한 층 더 깨버리는데는 성공한 것 같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이다.

그 외에도 책에는 즐길만한 요소가 많다. 히틀러가 대중을 장학한 일련의 과정 또한 눈여겨볼만 한 요소 중 하나이다. 흔히 비 현실적이고 거부감을 일으키는 우생학적 접근이 지배적이지만 실상 히틀러의 민심 장악의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정치와 사람의 심리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75p에 등장하는 베를린 분서사건이 루터의 종교개혁과 미묘하게 맞물린 것은 훗날 나치에 대한 신앙적 충성심의 시발점을 들여다보면 인류 역사 전체를 숙고하게 만든다. 분서

선전은 성공적이었다. 왜 이 책에 등장하는 여행자들 중 많은 이들이 독일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영국의 총리 체임빌런과 같이 이미 성장기에 독일에 환상을 가진 부류에 속하는 이들이라는 이유도 분명 있겠지만 히틀러의 사상 선전도 분명 한 몫했다.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선전을 감행했는지, 또 어떤 메커니즘으로 사람의 심리에 파고들 수 있었는지 등의 과학적 접근 방법은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 위력을 평가할 수 있는 증거는 다수 등장한다.

11장 “문인 관광객들” 편에는 세계적인 명망을 떨치고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들이 악명높은 독재 체제를 적극적으로 비난하지 않는 현상의 놀라움을 다룬다. 앵글로 저먼 리뷰와 같은 유명 잡지조차 장기간 나치 독일의 좋은 면만 비춘다. 잡지

일제강점기 치하 故 손기정 옹의 1936년 베를린올림픽 금메달은 오늘날까지 민족의 혼을 뜨겁게 달구는 화두이다. 이 고상한 베를린이 히틀러 독재기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흔치 않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베를린올림픽에서 조차 히틀러의 사상 선전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독일은 화폐 개혁 이후 경제를 안정시켰고 미국을 비롯한 막대한 해외 투자를 잘 활용하여 강력한 공업국으로 발돋움하였으며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뤄냈기에 히틀러 독재는 더욱 공고해졌다. 나치의 박애가 확산되었고 정당화되어 가고 있었다. 베를린

관광객들의 상당수가 독일을 옹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배경 또한 히틀러가 관광을 자국 안정 및 이미지 쇄신 책인 프로파간다의 도구로써 잘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선전이라는 단어가 구시대적이라는 이유로 간과할 일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IT, 미디어의 발달로 수단과 기술만 변했을 뿐이다. 오늘날 히틀러가 등장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선전을 펼쳤을까? 민주주의의 깨어있는 의식을 위해 한 번쯤 고찰할 문제다.

당시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것 또한 당연한 책의 매력 중 하나이다. 독일 수상이 못생겼다고 비평을 하는 모습, 똥보라는 비하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며 당시 인격적 모독이 일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 놀랐다. 다시금 인간의 심리적 원류를 엿볼만한 부분이다.

영국에서 일본까지 최장 거리 비행에 성공한 여성 파일럿 에이미 존스부터 로스차일드 가문의 오스트리아 은행 파산에 이르가까지 책의 메인 주제와는 무관하지만 과거를 오늘날 뉴스보듯 생생히 엿볼 수 있는 점은 마치 당시 독일을 관광하는 느낌이다. 공간적 여행만 가능한 오늘날의 여행에 시간의 여행을 더하는 고풍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독일인의 민족성과 자긍심도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은 두 차례 세계대전과 나치 독일을 반면 거울삼아 세계 최고 수준의 사상적, 민주적, 제도적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성장의 계기로 삼는 독일인들에게 세계는 칭송과 찬사를 보내지만 그 이면에는 독일인 특유의 강한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나치를 반면 거울 삼는 자세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수십 년의 독일을 비하하는 댓가로 민족의 우월함을 영속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치부도 당당하게 드러내고 분석하고 반성하는 그들의 모습이 존경스러우면서도 두렵기까지 하다.

아무튼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참 많은 여행을 즐기게 해준다. 시대를 건너뛰어 공간을 넘어 100년 전의 독일로 우리를 데려다 주는가 하면 히틀러의 머리속을 구경하게 해주며 독일인들의 사상 공간에 풍덩 빠치기까지 한다. 역사를 제대로 볼 줄 아는 메타인지라는 동앗줄을 놓지 않은 채 박진감 넘치는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떠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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