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사 간신열전



페이퍼로드 출판사의 "한국사 간신열전(최용범, 함규진 저)"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표지


한민족 역사상 대표적 간신으로 일컬어지는 20인을 중심으로 세상과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을 키워주는 책이다.

간신이라는 두 글자에는 온갖 더러움이 묻어있다. 마치 죽음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똥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든다.

그래서 굳이 이런 감정적인 소모를 하면서 까지 간신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간신을 깊숙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간신이 살아 온 시대적 배경과 그들의 개인사와 그들의 판단과 행동 속에 사람 사는 이치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왕이 사라진 시대에 간신이라는 단어는 성립될 수 있을 지언정 간신과 동일한 이미지의 사람들은 주변에 얼마든지 널려있으며 혹은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간신이 될 수도 있다.

책의 서두를 장식한 도림이라는 인물은 사실 고구려 입장에서는 위인이자 충신이다. 대표적인 쳐 죽일놈의 대명사로 통용되는 이완용도 일본 입장에서야 그런 충신이 없다.

선과 정의의 갈림길이 애매하듯 인간사와 사람 내면에 숨은 심리는 복잡하다. 단순히 내가 선이고 너가 악이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와 면밀한 검증없이 세간에서 떠들어대는 이미지를 맹신하여 누군가를 비방하는데 그치는 행위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을 뿐더러 기분나쁜 감정만 소모된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자 간신을 들여다 볼 필요성을 정당화한다.

범국가적, 민족적, 사회적 차원에서 정치 영역을 넘나들며 간신을 구별해 내는 눈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고상한 차원의 의무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인생에서 내 주위에 배치된 이들 중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옥석을 가리는 눈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간신의 유형을 크게 네 분류로 나눈다. 그나마 인간적으로 이해는 할 수 있을 법한 분류에서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분류로 열거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역사의 승자에 의해 간신이 된 약간은 억울한 부류가 있다. 대표적으로 원균이나 신돈같은 인물이 이 부류에 해당한다.

둘째는 왕의 측근이 되어 왕과 자신을 동일시해 스스로의 권력에 대한 탐욕이 왕까지 망치게 하는 부류로 홍국영, 묘청, 도림 등이 해당된다.

세번째는 권세에 취해 왕권까지 넘본 이들이다. 이자겸이나 한명회 등이 이에 해당된다.

네번째는 박쥐같은 이들이다. 오직 스스로의 사리사욕과 대세에 따라 움직이는 영혼없는 이들. 송유인, 유자광, 이완용이 그런 유형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최순실은 5천년 민족 역사상 유례없는 간신으로 소개되는 바 두번째 유형에 속함에도 국민이 주인인 이 시기에 활동한 간신이기에 최악으로 분류하고 싶어 개인적으로 별도로 언급한다.

간신들의 일대기와 그들의 개인적인 컴플렉스, 당시 시대 상황과 리더의 무능함 등 복잡한 상황을 읽고 있자면 그들에게도 사정과 변명거리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눈여겨 볼만하다.

즉, 간신의 일대기는 인간사 그 자체로 만약 독자 중 누군가가 간신들과 똑같은 조건에 처해졌다면 과연 달리 행동할 수 있을지 반문해 보는 것이 이 책의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백제 개로왕을 죽음에 빠뜨리고 한강 유역의 패권을 고구려에게 넘기게 만든 개로왕의 간신 도림은 백제 입장에서는 더 없는 간신임에도 고구려 입장에서는 그런 충신이 또 없다. 평가자의 소속이 어디냐에 따라 같은 인물임에도 평이 갈린다.

그가 고구려인 즉, 외부인이었기에 망정이지 백제 내부인이었다면 백제는 곧 멸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고구려 백제 멸망 시기 연개소문의 세 아들 간의 갈등으로 빚어진 내분이나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 부여융의 갈등으로 내분이 일어나 부흥운동으로도 나라를 일으키지 못한 사실이 그 증빙이다.

또, 단재 선생이 1천 년래 제 1대 사건의 주인공으로 손꼽았던 묘청 또한 시국에 대한 정확한 정세 판단이 부족했음은 물론이고 민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가담한 서경파의 권력 집권을 위해 사술과 사기를 일삼았던 행동을 보면 전형적인 간신이 된다.

같은 인물임에도 일제 강점기의 자주성이 중요한 시기에는 1천 년래 제 1 대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가 하면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기에는 그저 능력없는 간신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동일한 인물을 두고도 해석하는 시기에 따라 인물의 평가는 나뉜다.

홍국영도 정조가 세자에서 왕위에 오르기까지 암살 등의 위협에서 보호하고 초기 왕권 강화에 세운 공이 있으니 충신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다만 사리사욕으로 송시열이 주창한 세도라는 개념을 현실에 적용 가능한 모델을 만들었으니 간신으로 남게 되었다. 이 역시 양면성이 존재한다.

한명회도 그러하다. 어쩄든 무인의 역할로써 국방과 안보에 공헌한 바는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다만 두 차례나 국구의 지위에 오르며 재물을 탐하고 공정치 못한 인사로 사리사욕을 채운 점은 간신의 상이다.

비교적 최근의 인물에 해당하는 이완용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마저도 한 때는 독립협회를 세우는데 큰 공헌을 했다.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고 협회가 일어서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결국 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여러 세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고 대세를 판단하여 스스로의 부귀영화를 위해 박쥐같은 행동을 했으며 국권을 넘기는데 가장 앞장섰고 고종 독살설의 용의자에 오르는 등의 악행은 그를 간신 중의 간신으로 만들었다.

저자는 그의 행적을 니체의 사상과 결합한다. 이른 바 최후의 인간. 영혼을 잃어버린 채 껍데기로써만 살아가는 대표적인 유형이다.

그럼에도 이완용의 입장에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역지사지의 입장을 취해보는 저자의 표현이 예술이다. 방계로 타 가문의 양자로 입적되어 그 안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탁월해진 정세를 판단하는 그의 눈치가 그를 희대의 간신으로 만들었다.

이미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껍데기의 인생을 살아야 했던 그에게 세간에서 최고의 가치로 일컫는 충이나 의가 무슨 의미가 있었으랴. 그 때문에 영혼까지 팔아버린 그의 전횡을 두둔할 생각은 일말도 없으나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세상사와 인간사에 빗댈 가치는 충분하다.

충신과 간신은 종이 한 장 차이라 한다. 누구에게나 태생적 아픔이나 그런 행동을 하게 끔 만든 시대적 배경과 주변 인물들과의 역학이 존재한다.

저마다의 사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스스로의 원칙과 가치관을 건강하게 지켜나갈 필요가 있음은 물론, 그 속에서 내 주위의 간신을 객관적인 눈으로 냉철하게 분별해 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육험법

간신의 일대기를 살펴봄으로써 세상사를 피부로 느끼고 그 안에 숨은 사람들의 열 길 물 속의 깊이를 살펴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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