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노레 드 발자크



페이퍼로드 출판사의 "오노레 드 발자크(송기정 저)"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표지


90여 편에 이르는 소설 “인간극”을 비롯 하루 16시간 이상 글을 쓴 프랑스 작가 발자크의 생각과 작품 속에 녹아있는 프랑스 문화를 30년 간의 연구 끝에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한 명작이다.

200년 전 한 천재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발자크의 생애의 족적을 따라가며 우리나라의 정약용 선생이 떠오르기도 했다.

공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인물이자 왕성한 저작 활동 그리고 천재성은 물론 정치, 사상, 철학, 과학, 경제, 법 등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해박함까지 유사한 점이 많았다.

국학에 숨겨진 선조들의 지혜를 얻고 당대 천재들의 생각과 인사이트를 배운다는 점 외에도 200년 전 혹은 그 이전 사람들의 사상과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경세유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 등 기회가 닿는대로 다산 선생의 작품을 읽어 온 것은 그 때문이다.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근대화를 이룬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의 낯선 공간을 빗대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끼는 가치는 200년 전 한 사람의 생각을 옆에서 대화하듯 오롯이 알 수 있다는 것, 그럴 수 있을 정도로 그가 다방면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 마지막으로 30년 간 발자크를 연구한 저자의 노력이다.

특히 총 등장 인물이 2천 5백명에 달하는 인간극 총서에 가장 관심이 간다. 등장 인물의 수는 그렇다 치고 그 안에 거미줄 처럼 얽힌 유기적 관계를 모두 파악하고 글로 남긴 발자크의 천재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인간극

이 책의 말미에도 인간극의 작품별 주요 인물이 일부 소개되고 있는데 일부의 인물들 간 관계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오묘한 관계를 파악하고 있노라면 저자의 창의성, 당대 프랑스를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 등이 엿보여 즐거움이 샘솟기도 한다.

책의 첫장의 시작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발자크가 당시 활동했던 지역이나 그의 작품에서 등장 인물들이 활동했던 장소를 지도로 확인한 후 그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파리지도

프랑스의 지리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나 같이 프랑스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 지도를 먼저 익히고 출발하는 것은 나침반 있는 항해와 없는 항해에 견줄만큼 이해에 도움을 준다.

생제르망, 당탱, 마레 지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는 채 문학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반쯤 눈을 가리고 출발하는 일이다. 물론 이 퍼즐을 맞춰나가는 과정이 문학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하나의 묘미이겠지만 그래도 발자크와 같은 대 문호를 이해하는데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진다.

30년 간 발자크를 연구한 저자 분 덕에 200년 전 프랑스의 지리와 문화와 사람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지도를 펴놓고 그의 소설과 같이 엮어보며 파리에 존재했던 공간의 법칙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공간의 법칙을 어긴 인물은 댓가를 치른다 - 심지어는 목숨일지라도 - 는 당시의 생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어지는 2장 프랑스 대혁명과 7장 철학 연구의 초기 소설들 편은 발자크의 사상과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장이자 우리 사는 세상 진리가 모두 담겨있는 소재로 이루어져 있어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독자에게 등불을 밝혀주는 저자의 노력이 없었다면 가히 형체조차 인식하기 어려웠을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장은 발자크와 정치관, 과학, 경제, 법 등을 다루고 있는데 한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다양한 학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에는 19세기의 프랑스가 그대로 녹아있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이리라.

책의 말미에는 이를 증명하는 그의 연보가 나온다. 작가이자 사업가, 사상가이자 정치가로써 그의 왕성한 활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며 이렇게 많은 활동이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남긴 방대한 유작은 독자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연보

당시의 정치, 과학 수준, 금융 시스템이나 결혼 제도를 이해하는 재미는 물론 한 정치가가 자유주의자에서 절대왕정파로 이동하기까지의 상황과 심리를 엿보는 것은 신비하고도 즐거운 일이다.

사업가로서 연이은 실패로 빚더미에 시달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그를 16시간 이상 글을 쓰게 하여 독자들에게 의미있는 가치를 남기는 일련의 과정속에 삶의 오묘한 이치가 느껴지기도 한다.

근대화로 접어들며 산업 초기 신용 거래 및 경제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사회주의 진영의 싹이 트는 과정이나 대혁명 이후 부의 분배 문제에서부터 고질적인 자본주의의 행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얻을 수 있었다.

문학적으로는 인간의 이중성에 집중하는 것이 매력적이다. 스스로 사업가로 돈에 미치는가 하면 경멸하기도 하고 작품의 주인공들은 배신과 변절이 난무하며 어떤 구절엔 그간의 노력이 부질없다는 듯 허위의식을 풍자하는데 그러다보면 지금 사는 삶이나 그의 작품 세계나 차이가 있긴 한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바야흐로 오늘날은 컨텐츠 시대이다. 오징어 게임과 웹툰 산업 등 한류의 열풍의 중심에 컨텐츠가 있다. 인간극 총서의 등장 인물과 그들 간의 관계는 오늘날의 컨텐츠를 심오하게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 AI가 세상을 변화시키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축적된 데이터가 있어야 그럴듯한 성능을 낸다. 그런 측면에서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로서의 발자크의 인간극 총서의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하며 그의 행적이 AI 시대 사람이 나아가야할 방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이 도서는 리뷰를 작성하기 너무 어려운 책이다. 내용의 방대함은 물론 하나의 사상이나 생각에 빠져들면 단 몇 장의 분량으로 그 이상의 리뷰를 써야할 지경에 이른다.

말이 발자크의 세계관에 관한 연구이지 한 시대의 모든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녹여 낸 저자의 역량에 감탄할 뿐이다. 이 책으로 문학의 장르가 가질 수 있는 파괴력과 드 넓은 세계를 처음으로 느꼈다.

30년 내공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다시 한 번 소중한 책을 출간해 주신 저자께 감사드리며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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