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금의 세계사



한빛비즈 출판사의 "세금의 세계사(도미닉 프리스비 저/조용빈 역)"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표지


수메르 문명의 출발지에서 오늘날의 비트코인에 이르기까지 세금은 곧 욕망이자 권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으로 인류사 변화의 원동력이 된 과정을 저술하고 있다.

흔히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세금은 복잡하고, 밉고, 당연해서 알고 싶지 않은 것 중 하나이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도 소득이 좀 높아져야 그제서야 불만을 토로하며 알아가기 시작한다. 물론 부자들은 예외이다.

우리 눈에 이처럼 귀찮고 관심없는 하찮은 세금 따위는 무려 인류 역사를 뒤집어 온 원동력이다. 인류사는 욕망으로 돌아간다. 각 주체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결과이다.

그 이득은 때로는 부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고 때로는 명예 때로는 권력욕으로 나타난다. 스스로의 이득을 위해 살지 않는 인생은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 욕망의 충돌은 표면적으로 세금으로 귀결된다. 세금은 욕망 그 자체다.

책의 초두에는 원서의 제목과 어울리는 창문세가 등장한다. 애초에 벽난로, 화로 등에 부여하던 난방세를 폐지하며 대중의 지지를 얻은 정권이 세수 마련을 위해 창문세를 도입한다.

난방세가 가택 내부에서 측정하며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반면 창문세는 외관으로도 측정이 쉽고 그만큼 쉽게 세금 부여가 가능하다. 결국 민중은 창문을 없애거나 벽돌로 막아 자연이 주는 감사한 햇빛을 스스로 거부하기에 이른다.

햇빛이 들지 않는 실내는 세균이 퍼지기 딱 좋은 환경이다. 첫 시작부터 결코 세금은 작은 녀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에게 질병까지 가져다 줄 정도이니 말이다. 로마에는 심지어 오줌세도 있었다.

세금이 얼마나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는지 왜 인류사의 원동력이라고까지 관대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저자의 세금사 퍼레이드는 여러장에 걸쳐 지속된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 수메르에는 세금 문제로 도시 국가의 다툼이 발생한다. 문명의 발상지는 곧 세금의 발상지인 셈이다. 세금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고 심지어 노예로 만들어 인간을 사유재산화 하기에 이른다. 세금은 인류의 자유를 빼았는 가장 강력한 적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종교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에 세금이 있었다. 예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세금을 납부하러 가는 과정에서 베들레헴에서 예수를 출산하였으며 바리새인들의 농간앞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바쳐라”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지만 결국 그리스도왕으로 군림한다는 모함으로 본디오 빌라도 총독앞에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이집트로부터 압박을 받던 히브리인들을 모세가 자유의 땅을 찾아 탈출시키는 과정 또한 세금과 관련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히브리인의 대다수가 번영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세금이 메겨졌고 세금은 이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중세의 흑사병은 인구의 감소를 불러왔고 노동력이 줄어들자 농노들은 자유와 사유재산이 보장되기 시작했다. 이 자유를 원동력으로 르네상스의 꽃이 피게 되는데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세금이 얼마나 악독한 존재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사정은 미국의 독립혁명과 남북전쟁까지 이어진다. 독립혁명의 가장 큰 발발 원인은 영국의 세금 징수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함이었다. 이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일화이지만 남북전쟁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마치 남쪽의 노예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거룩히 피를 흘린것으로 포장되는 남북전쟁과 링컨의 위대함 저변에는 세금과 추악한 욕망이 숨어있었다.

물론 인권 보장의 명분을 모두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실은 남부의 관세가 북부의 제조업을 위해 쓰였다는 사실과 남부를 더욱 강력히 통제하여 단물을 뽑겠다는 심산은 세간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 끝나도 세금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치 오늘날 유가 상승으로 주유소의 기름값이 폭등은 해도 유가 감소에도 불구하고 기름값은 매 한자리인 그런 느낌이랄까?

어쨌든 전후 세금은 소득세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더욱이 세금 수탈자들의 방법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었다. 달러를 무제한으로 찍어내는 채무 또한 결국은 세금이다. 언젠가 갚아야 할 후손들의 몫이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채무에 발생하는 이자 증가는 말할 나위도 없다.

인플레이션 또한 세금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벼락거지들은 심지어 부동산 투자로 이득을 본 사람조차 손해 본 사람, 이득 본 사람의 프레임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사실 승자는 국가이다.

인플레이션은 결국 세금이다. 돈이 시중에 풀리며 돈이 가치가 낮아졌으니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이고 국가가 이득을 보는 셈이니 세금이라 불러야 정당하다.

집값이 오른것은 그저 제 가치를 지켰을 뿐인데 돈을 번 것 처럼 웃는 사람도 어리석고, 본전조차 지키지 못한 벼락거지들의 사정은 더욱 말할 것 없다. 웃는자는 그저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일 뿐이다.

잔혹해 보이기까지하는 이런 세금사에 그나마 일말의 희망이 보였던 일화도 있었다. 홍콩과 고대 그리스가 그 예이다.

홍콩은 보이는 손을 배제하기 위해 무관세의 정책을 폈다. 한마디로 세금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장 개입을 최소화했더니 세계의 금융이 몰렸고 이는 홍콩의 발전을 폭발적으로 견인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도 세금이 없었다. 오직 자발적으로 내는 세금이 존재했을 뿐이다. 리터지라 불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과 유사한 가진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세금이 있었고 이들은 대신 명예를 얻었다. 온전한 살신성인의 자세는 아니지만 적어도 추악했던 다른 세금사에 비해 아름다운 장면이다.

세율을 높힌다고 세금이 증가하진 않는다. 그리고 세금을 더 징수하려고 노력하면 결국은 질병이나 인구 감소로 이어져 더욱 세수가 줄어드는 기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비트코인과 암호화 기술 또한 마찬가지이다.

더 뜯어내려하는 기술이 발전할 수록 더 내지 않으려는 자들 또한 강력해진다.

그렇다면 인류를 쥐락펴락했던 이 세금을 걷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없애야 하는 것인가?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다. 핵심은 세금을 얼마나 납부해서 어떻게 사용하는데 있다. 저자는 GDP의 15% 미만의 세금을 권장한다.

그리고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가 추가로 소개된다. 토지 입지 이용세라는 것인데 이는 토지의 가치가 상승하여 불로소득이 발생하는 과정에 세금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이다.

오늘날 양적완화이후 노동의 가치가 훼손된 적이 있던가? 일하며 돈을 버는 자들은 멍청이가 되었고 자는 동안 저절로 돈이 벌리지 않으면 평생 그렇게 살 것이라는 문구가 개인의 노력을 중요시 하는 이들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다.

노력한자가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얻는다.

이 전제에 이 공정에 불만 있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장애인이나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어 출발선이 상이하지 않는 이상 이 대전제에 불만이 존재할 수 없다. 사회 대부분의 갈등은 아마도 이 공정함에 유지되지 않기 떄문일 것이다.

그런 공정성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나는 상속 자산을 꼽고 싶었다. 그런데 저자는 불로소득을 겨냥하고 있다. 토지의 가치 상승은 결국 공동체 일원들의 경제 활동을 통해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니 모두의 노력이다.

당연히 공동의 노력이 자산의 가치를 상승시켰으니 이는 토지 소유주가 노력한 것이 아니고 그만큼 세금으로 뱉어내야 하는 셈이다. 끝으로 저자는 구독경제를 공공서비스에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세금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결론으로 책을 마무리 짓는다.

책을 덮고 난 후 여운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주위의 사람들, 물건들까지 바라보는 프레임이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바라보면 바라볼 수록 세금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금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세상을 바꿔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책은 곱씹을 가치가 충분하며 널리 읽혔으면 한다. 인간 본연의 욕망 그 자체인 세금은 전쟁, 질병, 자유의 박탈 등 그 어떤 위기도 쉽게 일으키는 악마의 트리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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