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람을 얻는 지혜



현대지성 출판사의 "사람을 얻는 지혜(발타자르 그라시안 저/김유경 역)"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표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놓치고 있는 사람의 본성과 관계에 관한 수준높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으로 영어 번역을 거치지 않은 스페인어 완역본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사람은 언젠가 죽고 수십년 인생을 살아가며 얻어낸 가장 소중한 가르침이나 교훈은 대부분 후대에 전달되지 못하는 듯 하다.

수천년의 문명을 영위하며 오롯이 그것을 소실없이 잘 전달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채 살아가지만 수십년 세월을 살고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불과 수십년 전의 절대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쉽사리 거짓으로 밝혀지는 것을 보며 때로는 우리가 아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을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듣고 보는 정보나 지식들이 어느 수준까지 믿을만한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고전을 즐겨찾는다.

고전의 매력을 감상하는 것 자체로도 삶의 풍요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면서도 당장 내가 처한 삶의 곤란한 난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어내곤 하니 딱딱하고 지루해 보인다는 선입견만으로 고전을 배척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이 책 역시 그러한 고전의 특성을 잘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 저자의 시공을 초월한 안목은 책의 곳곳에 드러난다.

오늘날 우리가 근심을 해결할 모든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당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르네상스 시기의 스페인에서 어떤 색다른 해결책이 있었는지, 또는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나 적용할 만한 지혜가 있는 것인지 전달해주니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너무 추상적인 설명은 작품의 설명에 큰 도움이 안되니 책에 등장하는 300가지 조언 중 한 예시를 들어보겠다. 아래 그림은 13번째 조언으로 “미덕”이라는 카테고리로 편입되어 있는 조언이며 시간이 없다면 밑줄 친 부분만 읽어도 직관적으로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의도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숨겨진 의도를 찾는 일일 것이다. 손자도 남마저 알면 백전백승이라하였고,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그러하듯 상대의 의도를 알고 모름은 관계의 성패를 좌지우지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중의 사람, 심리, 철학을 다루는 책 중에 많은 책을 읽어보았지만 두가지 혹은 세가지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의도를 감추라는 책을 읽었어도 늘 두가지 이상의 의도를 가지고 행하라는 조언은 만나보질 못했다.

의도에 관한 조언들은 읽는 내내 신선했는데 관련 주제로 다시 엮어 얻은 조언을 몇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215번째 조언 의도를 숨기고 접근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상대가 자신의 의도를 신경 쓰지 않게 만든다. 가짜 의도를 드러낸다. 우리는 그 진짜 의도를 알아채야 한다. 때때로 이미 그 의도를 간파했다는 것을 상대에게 암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227번째 조언 첫인상에 휘둘리지 말라(초두 효과를 말하는 듯 하다).사람들은 첫 번째로 들은 정보와 결혼한다. 나머지 정보들은 첩과 같은 신세가 된다. 알렉산더 대왕도 늘 반대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반대쪽 귀를 남겨두었다.

  • 250번째 조언 남들이 우리에게 악의를 갖고 말할 때는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가 어떤 일에 대해 나쁘게 말한다는 건 그것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의도를 파악해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점을 칭찬하지 않으려고 반대로 나쁜 점을 칭찬한다.

  • 273번째 조언 상대의 기질을 파악해라. 그래야 그 사람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상대의 표정을 파악하고, 영혼의 신호들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늘 웃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고, 한 번도 웃지 않는 사람은 믿지 못할 사람이며, 늘 성가시게 질문하는 사람은 첩자이거나 경솔한 사람이다.

    추한 모습을 한 사람에게는 좋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세상이 자신을 전혀 귀하게 여기지 않는 듯, 그들도 세상을 전혀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도를 중요시 하는 내게는 그간 어디서도 보지 못한 저자만의 통찰을 느낄 수 있고 심지어 실용적으로 얻을만한 여러 스킬을 얻을 수 있어 읽는 내내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느낌인지라 박진감 때문에 책에서 손을 떼기 어려웠다.

다른 독자들의 소감은 어떨지 궁금하다. 고전들이 항상 그러하듯 읽는 독자마다 지식의 수준, 필요로하는 정보의 차이, 정보의 격차, 관심도 등이 모두 다를 것이기에 내게 떠오른 느낌표가 다른 독자와는 상당부분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이 책만큼은 다른이들이 남겨놓은 리뷰에도 관심이 많다.

리뷰를 먼저 읽음으로써 사상에 순수한 가르침이 희석되지 않도록 애썼다. 이제 이 리뷰를 다 작성하는대로 다른 이들의 리뷰를 읽을 수 있게 되니 벌써부터 마음이 근질거린다.

이 외에도 뒤통수를 맞은 것 처럼 머릿속에 신선한 느낌표를 떠오르게 만드는 놀라운 질문들이 많다. 이 역시 고전을 읽으며 느끼는 신선함과 재미일 것이다.

참고로 읽는데 도움이 될 만한 구성 상의 특징 몇가지를 소개해본다. 먼저 솔로몬의 잠언 형식과 동일하게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형식으로 대략 300가지의 조언이 소개된다.

중분류 카테고리로 관계, 미덕, 성숙, .. 등 총 8부작으로 엮여 있지만 이는 편집자의 관점에 따른 분류인 듯 하다. 이 프레임 역시 난해한 저자의 표현에 큰 물줄기를 따라가게 해주는 소중한 분류이지만 독자는 이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분류를 재구성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여정일 듯 하다. 위에 “의도”를 기준으로 새롭게 분류한 예시는 나만의 그러한 여정이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중분류와 각 조언의 제목은 편집자가 임의로 부여한 것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프레임만을 기준으로 바라봐 다른 프레임이나 시각을 잃는 것은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기에 이 점이 우려되어 별도로 언급한다.

또 하나 구성 상의 특징은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해제파트 이다. 우리 말로 읽어도 어색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역자는 번역을 충실히 수행해 낸 것 같다. 영어를 거치지 않은 완역본의 품질은 보다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아울러 스페인 내 작품 중 손꼽히는 난해도를 자랑하는 작품을 우리글로 음미할 수 있게 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해제에는 저자, 당시 시대적 배경, 작품에 관한 역자의 지식이 담겨있어 보다 풍부한 이해에 도움을 준다. 이 중에서도 책의 제목이 인상적인데 “신탁 편람과 지혜의 기술”이라는 원제가 독특하다.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 의도를 부각시키기 위해 어떤 문학적 장치들이 활용되었는지도 작품을 감상하는 쏠쏠한 재미 중 하나이다. 제목

이 책을 읽고 현대지성이라는 출판사에 큰 호감이 생겼다.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는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광고로도 내가 필요로 하는 책들을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에 대한 쉬운 방법을 소개해줬다.

매우 저렴한 정가에 세상의 가장 소중한 지혜들을 품고 있음에도 친환경 종이 및 잉크를 사용하여 정성을 듬뿍 담아낸 책이 소장가치를 높여준다. 고전을 읽는 분위기에 한 껏 취할 수 있게 해준 보기 드문 내실있는 멋진 출판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지면이 부족하여 모두 소개하긴 어렵지만 이 책에는 놀랄만한 통찰이 담겨있다. 지혜의 기술도 기술이지만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그대로 두는 것, 드러내지 않는 것이 큰 전략임을 강조하는가 하면 아는 지식도 실제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지혜들도 담겨있다.

세상에 그간 접하지 못했던 신선한 통찰을 얻고 사람의 숨겨진 속성을 잘 이해함으로써 보다 지혜롭게 현실에 대처하는 지혜를 얻고 싶다면 그라시안이 전하는 메시지를 권하고 싶다. 그 어떤 책보다 풍요로운 그윽함이 남을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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