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의사 생리학



페이퍼로드 출판사의 "의사 생리학(루이 후아르트 저/홍서연 역)"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표지


19세기 중엽 비과학적인 의술을 기반으로 대중들을 속여 사기에 가까운 이문을 남기는 의사들의 행태를 고발한 불문학 작품이다.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의료 행태가 어떠했는지는 물론이고 당시의 프랑스 사회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며 당시 풍자와 해학의 문학적 미를 음미해 볼 수 있다는 점도 재미를 돋구는 요소이다.

제목에 사용된 생리학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거의 쓰이지 않아 생소하게 느껴진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생리학은 “생물체의 기능을 연구하는 과학의 한 분야”로 정의되어있는데 분명 이 책이 담고 있는 의사에 대한 풍자나 문학이라는 색깔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제대로 된 생리학의 의미는 책 첫 페이지에 저자 루이 후아르트에 대한 소개와 프랑스 근대 문학에 정통한 역자의 해설을 통해 바로 잡을 수 있었는데 일종의 문학적 은유로 활용된 느낌이다.

1840년 대 초반 프랑스에는 생리학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이 작품은 시리즈의 초창기에 등장한 작품이다. 생리학 시리즈는 당시 도덕적이지 못한 특정 계층을 풍자하고 사회적으로 고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 중 이 책은 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나 약사를 풍자한 책이다. 일전에 같은 시리즈 중 하나인 부르주아 생리학도 감명깊게 읽어 리뷰를 남겼으니 필요시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의 주를 이루는 내용은 의사의 부도덕한 행태이다. 당시 프랑스 의학 수준은 실험적 성격이 강했으며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의술이 여전히 행해지거나 민간 요법으로 내려온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위험한 치료법이 행해지던 시기였다.

처음 등장하는 치료법은 동종요법이다. 동종요법은 병세를 일으킨 원인 물질과 유사한 물질로 병을 키워 치료하는 방법으로 오늘날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치료법임에도 널리 행해졌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 결과의 해석 또한 흥미롭다. 완치되면 모두 의사의 전문성으로 공이 돌아가고, 죽음에 이를 경우 애초에 병세가 심각하여 갖은 노력을 취했으나 사망한 것으로 간주 되었기에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해석에 대한 견해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만약 병세에 차도가 없다면 환자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이다. 용법에 따르지 않고 약을 한 스푼 덜 먹었다거나 조금이라도 더 먹었거나 심지어는 처방전에 명시한 약사에게서 약을 제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일부 몰지각하고 비양심적인 의료인들로부터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명제, 역, 이, 대우 사이에 존재하는 온갖 것들이 의사가 핑계로 삼을 수 있는 무기가 되어버린다.

문맹률이 현저히 줄어들고 의무교육과 고등교육으로 과학적 상식이 풍부해진 오늘날의 대중에게도 의료에 대한 지식은 요원한데 당시 대중들은 오죽했을까?

다른 교양서를 통해 히포크라테스 이후 1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서양 의학은 제자리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퇴보했다고 평가를 받고 있으니 이제 막 중세를 벗어나 산업혁명의 태동기였던 이 시절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모든 의학이 시장에 판치는 과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동종요법 외에도 사혈 요법도 등장한다. 이는 5리터의 피(Nine Pints)라는 책에서 만났던 흥미로운 주제이다. 피를 놔두면 4개의 색을 가진 층으로 분리되는 것 처럼 보이는데 각각의 층이 4원소와 대응되어 원소설을 기반으로한 터무니 없는 의료 논리가 펼쳐진다.

심지어 심각한 병에는 강한 치료가 제격이라며 실신에 이를 정도로 피를 뽑는 비 이성적인 행태가 벌어지기도 했으니 당시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인지 죽음을 가속시키는 사람인지 분간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맹점은 오늘날까지 부의 양극화를 비롯한 많은 부작용을 이어어고 있지만 당시에도 자본주의의 마수가 의학 분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듯하다.

오늘날 가장 공부잘하는 아이들이 의사, 판검사의 이른바 엘리트코스를 밟는 현상이 이미 프랑스에는 200년 전 부터 시작되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른바 노력 대비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으로 의사는 엘리트라 통칭하는 직업군 중 하나였다.

돈이 제1의 목적이 된 이상 사람의 목숨이나 건강은 뒷전이다. 아래 그림은 어떤 환자의 치료가 어려워지자 유관 분야의 의사 4명이 모여 회의하는 내용을 풍자하는 장면이다. 팀

한명은 서서 그림 얘기나 하고 있고 나머지는 채권의 가격 혹은 자신이 사용하는 숙박권의 교환 등 돈과 관련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전념한다. 4명 의사의 선발 기준은 오로지 인맥이다. 최초로 진료를 본 의사와 친한 친구이거나 상부 상조하는 관계에 있는 의사들이 팀으로 꾸려진셈이다.

환자의 치료를 위한 논의는 온데간데 없고 사설만 늘어놓다 뻔한 진료 결과를 내놓는다. “당신의 병은 위중하며, 우리는 실력이 넘치고, 사혈요법으로 합의를 보았으며, 진료비는 80프랑이다.”

이어지는 서로 모르는 의사 3명의 풍자도 재미있다. 서로 다른 방식의 치료법만 내세우다 의자를 던지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저자가 당시 행태를 어느정도로 강력히 풍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의료 행태가 상당히 심각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풍자에는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비판적이고 분석인 안목이 곁들여 있는데 그 중 일부 시각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해 보인다. 살면서 돌팔이 의사 한 명쯤은 누구나 만난 기억이 있을텐데 그 때 그들의 의견을 매의 눈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유용한 스킬도 있었다.

손자병법에 이르는 바아 같이 상대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대부분 의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적은 없다. 저자는 완전히 반대편 의사가 되어 적을 꿰뚫고 있는데 이런 안목과 접근법은 꼭 의학을 떠나 비판적인 안목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자연이 내려주신 물로 치료를 한다는 수치료사나 외국의 진귀한 한약재를 첨가하여 약의 가격을 높이는 약사의 행태 등 당시의 치열했던 사기의 현장이 흥미진진하게 담겨있다.

이런 생생한 시대상과 날카로운 풍자 외에도 저자의 신랄한 프랑스식 고전 위트를 즐겨보는 것도 책을 재미있게 읽는 한가지 방법이다.

다양한 풍자와 일화가 소개되고 있지만 특히 44p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위트는 꽤 논리정연하다. 의사가 약 냄새를 코에 2번 맡게 해 두통을 치료했다고 하며 집에 돌아가면 다 나아있을거라 사기를 치는 장면에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환자는 책에서 아래와 같이 대응한다. 위트

돈 냄새를 2번 맡게하고 집에 돌아가면 지갑에 진료비가 들어있을거라는 거짓말은 분명한데도 의료 행위의 같은 논리는 어째서 진실로 통용되고 있는지 저자의 논리적인 위트가 정곡을 찌른다.

당시 프랑스의 시대상이나 의료 행태라는 지식없이는 이 책의 진가를 반도 느끼기 어렵다. 다행히 생리학 시리즈 책이 여러 권 출간되어있어 각 권을 읽으며 비교 대조한다면 당시 프랑스와 유럽의 새로운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책의 말미에 역자의 해설이 담겨 있으니 이를 꼭 참고한 후 다시 음미한다면 처음 읽을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그림같은 풍경으로 되 살아나는 신기한 경험이 가능할 것이다. 당시 프랑스의 정취와 해학을 느끼고 싶다면 본 도서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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